close
본문으로 이동

유엔 사무총장 선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유엔 사무총장 선출(영어: United Nations secretary-general selection)은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사무총장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이사국 중 최소 9개국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한다. 이후 유엔 총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사무총장을 임명한다.

비공식적으로는 선거라고 불리지만[1] 유엔에서는 이를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택 및 임명 절차"라고 지칭한다.[2] 총회가 안전 보장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의 임명을 거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안전 보장 이사회의 선택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

[편집]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규정하는 공식적인 규칙은 거의 없다. 유일한 지침이 되는 문구는 유엔 헌장 제97조로,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의하여 총회가 임명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헌장의 이 최소한의 규정은 이후 다른 절차적 규칙과 관례에 의해 보완되었다. 1946년 유엔 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총회의 심의를 위해 단 한 명의 후보자만을 제안하고, 총회에서 후보 지명에 대한 토론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3]

선출 과정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4] 만약 상임이사국이 특정 후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투표 결과는 비밀로 유지되므로, 이는 공식적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대한 거부권으로 산정되지는 않는다. 1981년 선출 과정에서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안전 보장 이사회는 비밀 선거를 통한 가투표(straw poll)를 실시하기 시작했다.[5]:411 이 가투표 시스템은 1996년 위스누무르티 가이드라인(Wisnumurti Guidelines)으로 문서화되었다.[6]

절차

[편집]

현직 사무총장의 임기가 끝나기 몇 달 전, 안전 보장 이사회 이사국들 사이에서 점수 투표 방식의 비밀 선거가투표가 실시된다. 투표는 특정 후보에 대해 "권장"(encourage), "비권장"(discourage) 또는 "의견 없음"으로 표시된다.[6] 상임이사국의 투표지는 비상임이사국의 투표지와 섞여서 집계된다. 가투표 결과에 따라 후보자가 사퇴하거나 새로운 후보자가 지명될 수 있다.

다음 단계의 가투표에서는 거부권의 존재 여부가 드러난다. 상임이사국은 빨간색 종이에 투표하고, 비상임이사국은 흰색 종이에 투표한다.[6] 만약 상임이사국 중 어느 곳이라도 "비권장"에 투표하면 이는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가투표는 어떤 후보자도 거부권을 받지 않고 다른 후보들보다 더 많은 "권장" 표를 얻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후 안전 보장 이사회는 해당 후보를 총회에 추천하기 위해 투표한다. 1996년 이후부터는 사무총장이 만장일치로 추천될 수 있도록 박수로 추대하는 방식을 취해왔다.[7]

마지막 단계에서 총회는 추천된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한다. 1950년을 제외한 모든 선출 과정에서 총회는 사무총장이 만장일치로 임명될 수 있도록 박수로 추대했다.[5]:404 안전 보장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가 총회에서 거부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총회에서의 반대 투표 위협은 안전 보장 이사회의 심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사무총장 선출 과정은 종종 교황 선출 과정에 비유된다.[8][9][10] 투표권이 소수의 국가 그룹에 한정되어 있고, 비밀리에 진행되며, 여러 차례의 투표를 거치고,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흑백의 연기를 내기 위해 투표지를 태우지는 않지만, 투표 용지는 빨간색과 흰색 종이로 인쇄된다. 비록 투표는 비밀이지만, 외교관들은 항상 기자들에게 그 결과를 유출한다.[8][11]:206–207 과거 가톨릭 강대국들이 배척권을 통해 교황 선출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것처럼, 사무총장 후보들 또한 상임이사국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

자격 요건

[편집]

사무총장직을 맡기 위한 자격 요건이 공식적으로 정해진 적은 없다. 그러나 관례를 통해 몇 가지 요건이 확립되었으며, 이는 중국과 프랑스의 거부권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중국과 프랑스가 내세우는 자격 요건을 인정하지 않으며,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유엔의 권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출신 후보는 사무총장 후보로 지명된 적이 없다.[12]

임기 제한

[편집]

사무총장직은 2회 임기 제한을 적용받는다. 우 딴은 세 번의 임기를 수행했으나, 앞선 두 번의 임기는 부분 임기였으며 이를 합쳐 한 번의 전체 임기로 간주했다. 1981년 중국은 쿠르트 발트하임의 3선 선출에 대해 16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고, 결국 발트하임은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1981년 이후 어떤 사무총장도 3선에 도전하지 않았다.

지역 순환 원칙

[편집]

사무총장직은 유엔의 유엔 지역 그룹 간에 순환된다. 각 지역은 연속해서 2회 또는 3회 동안 사무총장직을 맡는다. 해당 지역 출신 후보는 다음 선출에서 제외되며, 새로운 지역이 그 자리를 맡게 된다.

  • 1976년, 중국은 제3세계 출신 사무총장을 선호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에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 1981년, 중국은 아프리카 후보를 지지하며 발트하임이 후보직을 사퇴할 때까지 16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전 보장 이사회는 라틴아메리카 출신을 선택하며 교착 상태를 깼다.
  • 1991년, 미국과 영국은 지역에 상관없이 후보를 선출하려 했으나 중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13]
  • 1996년, 프랑스 대사는 차기 사무총장이 "아프리카 출신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14] 다른 지역 후보를 지명하려는 시도는 중국이 아프리카 이외의 후보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믿는 외교관들에 의해 묵살되었다.[15]
  • 2006년, 중국은 차기 사무총장이 아시아인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모든 아시아 후보들에게 찬성표를 던졌다.[16]

영어 및 프랑스어 유창성

[편집]

사무총장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일부 선출 과정에서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후보에게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하지만,[17] 다른 선출 과정에서는 기권하기도 했다.

  • 1946년,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노르웨이의 트뤼그베 리를 반대했으나, 나머지 4개 상임이사국이 합의에 도달하자 그에게 투표했다.[18] 미국은 폴앙리 스파크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우려했으나, 그는 대신 총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19]
  • 1971년, 핀란드의 막스 야코브손은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20] 핀란드 대표단은 프랑스가 1차 투표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비난했으나, 실제로 프랑스는 기권했었다.[21]
  • 1991년,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는 한 회의에서 경쟁자인 버나드 치제로를 만났다. 대화 도중 치제로는 자신이 진지한 후보임을 보여주기 위해 갑자기 프랑스어로 말을 바꿨다. 부트로스갈리는 자신도 "프랑스 억양으로 영어를 할 수 있다"며 프랑스가 자신을 선호할 것이라고 농담했다. 두 후보 모두 가투표에서 거부권을 받지 않았다.[17]
  • 1996년, 프랑스 대사는 차기 사무총장에 대해 "그가 아프리카 출신이기를 바라며, 프랑스어를 구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14] 프랑스는 처음에 프랑스어 비사용 국가 출신의 모든 후보에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결국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영어권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이 사무총장이 되는 것을 허용했다.
  • 2006년, 샤시 타루르는 선거 운동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중국 외교부 장관은 타루르의 언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인터뷰 도중 프랑스어로 말을 바꿨다. 타루르는 아시아 후보 중 유일하게 프랑스어에 능통했으나 미국의 거부권을 받았다.[16] 반기문은 프랑스의 거부권을 피하기 위해 저녁에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예방 조치를 취했다.[22]

선출 결과

[편집]

사무총장 대행

[편집]

글래드윈 젭은 1945년 8월 유엔 준비위원회 집행 비서로 재직하였으며, 1945년 10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유엔 사무총장 대행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그의 후임인 트뤼그베 리는 유엔 헌장에 따라 임명된 최초의 사무총장이었다.

1946년

[편집]

캐나다의 레스터 B. 피어슨이 사무총장 후보로 유력했으나, 소련은 유엔 본부가 북미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지리적 근거를 들어 그를 반대했다. 상임이사국들은 벨기에의 폴앙리 스파크에게 유엔 총회 의장 선거에서 패했던 노르웨이의 트뤼그베 리로 합의했다.[23] 1946년 2월 1일, 강대국 간의 타협 결과로 리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만장일치와 총회의 46대 3 투표를 통해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24][25]

1950년

[편집]

유엔이 6.25 전쟁에 개입한 이후, 소련은 트뤼그베 리의 재임명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은 안전 보장 이사회의 권고 없이도 총회가 리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틴아메리카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은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다른 후보가 필요한 7표의 과반수를 얻지 못하자, 안전 보장 이사회는 총회에 권고를 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 이에 총회는 46-5-8 투표로 리의 임기를 1954년 2월까지 3년 연장하기로 결의했다. 소련은 이 투표를 유엔 헌장 위반으로 간주했고, 리의 원래 5년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사무총장직이 공석이 된 것으로 보았다. 리는 1952년 "지금이 유엔에 해를 끼치지 않고 떠날 때라고 확신한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고, 1953년에 물러났다.[26]

1953년 및 1957년

[편집]

1952년 11월, 트뤼그베 리는 사임을 발표했다. 소련은 1950년 리의 재선출에 거부권을 행사했었고, 총회의 임기 연장 또한 불법으로 간주했다. 이후 소련은 리를 무시하며 모든 서신을 사무총장이 아닌 "사무국" 앞으로 보냈다.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 협상이 진행 중이던 당시, 리는 새로운 사무총장이 소련과의 업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양측 초강대국은 1953년 1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취임과 1953년 3월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으로 정부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영국은 캐나다의 레스터 B. 피어슨을 위해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벌였으나 소련에 의해 다시 거부당했다. 필리핀의 카를로스 P. 로물로는 미국의 후보였으나 7표의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소련 후보들은 대규모 기권표를 받았다. 3주간의 협상 끝에 프랑스는 미국의 국무부조차 처음에 누구인지 잘 몰랐던 무명의 스웨덴 후보 다그 함마르셸드를 제안했다. 그러나 함마르셸드는 양대 초강대국 모두에게 수용 가능한 인물이었고, 안전 보장 이사회는 그를 리의 후임자로 선출했다.[27]

다그 함마르셸드는 1957년 만장일치로 재선출되었다. 그러나 소련은 1960년에 발생한 콩고 위기에 대한 함마르셸드의 대처에 불만을 품었다. 소련은 그에게 사임을 압박하며 사무총장을 3인 위원회인 삼두정치(troika)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28] 서방 국가들이 이에 반대하자 소련은 아이디어를 철회했다. 함마르셸드는 1961년 북로디지아(현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29][30]

1961년, 1962년 및 1966년

[편집]

유엔 헌장에는 사무총장직 승계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에 함마르셸드의 사망은 승계 위기를 불러왔다. 소련은 삼두정치를 추진했고,[31] 미국과 영국은 총회 의장이 사무총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안전 보장 이사회를 우회하는 계획을 세웠다.[32] 일주일간의 협상 끝에 소련과 미국은 버마의 우 딴이 함마르셸드의 역할을 맡는 것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초강대국은 사무차장보의 수를 두고 미국은 5명,[33] 소련은 3, 4, 6 또는 7명을 고집하며 4주간 대립했다.[34][35] 이 대립은 초강대국들이 이를 우 딴이 직접 결정하도록 맡기기로 합의하면서 해결되었다.[36] 우 딴은 함마르셸드의 남은 임기인 1963년 4월 10일까지의 사무총장 대행으로 만장일치 선출되었다.[37]

임기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우 딴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 우 딴을 호의적으로 언급하면서 그의 재선출이 확실시되었다.[38] 개인적인 이유로 우 딴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가 함마르셸드 임기 종료 시점이 아닌, 자신의 선출 시점으로부터 5년 뒤에 끝나기를 원했다.[38] 1962년 12월, 우 딴은 사무총장 대행에서 사무총장으로 승격되었으며 임기는 1966년 11월 3일까지로 정해졌다.[39]

1966년 우 딴은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40] 하지만 그를 계승할 후보가 지명되지 않았고, 우 딴은 3선으로 추대되었다.[41] 그의 임기는 1971년 12월 31일에 끝났으며,[42] 이후의 모든 선출 과정에서는 사무총장의 임기가 달력 연도와 일치하게 되었다.

1971년

[편집]

두 번의 전체 임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재임한 후, 우 딴은 1971년 말에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련은 그를 유임시키려 했으나,[43] 미국은 그가 은퇴할 수 있도록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약속했다.[44]

핀란드의 막스 야코브손이 경선 내내 유력한 후보였으나,[45] 1차 투표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쿠르트 발트하임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오르티스 데 로사스 또한 2차 투표에서 9표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중국은 발트하임에게, 소련은 야코브손과 오르티스에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3차 투표 전 미국과 영국 대표단은 발트하임의 선출을 막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기권하고 중국의 거부권에 의존하기로 결정했다.[46] 놀랍게도 중국은 거부권을 기권으로 바꿨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거부권 없이 1972년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임기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1976년

[편집]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6년 루이스 에체베리아를 가볍게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1971년에는 상임이사국 중 세 나라의 반대를 받았고 3차 투표에서 우연히 승리했던 발트하임이었지만, 1976년에는 상임이사국 5개국 모두의 지지를 얻었다. 중국은 제3세계 출신 사무총장을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1차 투표에서 발트하임에게 상징적인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2차 투표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47]

1981년 및 1986년

[편집]

쿠르트 발트하임은 전례 없는 3선에 도전했으나 살림 아흐메드 살림에게 한 표 차이로 밀렸다. 그러나 중국이 발트하임에게 거부권을 행사하고 미국이 살림에게 반대하면서 선출 과정은 16차례나 교착 상태에 빠졌다.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국 선거 운동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던 다크호스 후보로 의견을 모았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가 1982년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임기에 선출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 출신 최초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1981년 선출 과정은 많은 선례를 남겼다. 교착 상태를 해결한 가투표 시스템은 향후 선출 과정에 도입되었다. 발트하임에 대한 중국의 16차례 거부권은 2기 임기 제한을 확고히 했으며 지역 순환 원칙을 정립했다.

1986년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재임하도록 추대되었다. 당시 유엔은 미국 의회의 분담금 삭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관상동맥우회로이식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페레스는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식의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했으나, 의무감을 느껴 재임을 수락했고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선출되었다.[48][49]

1991년

[편집]

1991년은 아프리카가 사무총장직을 맡을 차례였다. 8명의 아프리카인이 후보로 지명되었고, 아프리카 단결 기구(OAU)는 회원국들이 총회에서 비아프리카계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총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비동맹 운동 또한 OAU가 지명한 모든 후보를 지지했다. 중국 역시 아프리카 출신 사무총장을 지지했다.[50] 그러나 안전 보장 이사회의 다른 4개 상임이사국은 지역 순환 원칙을 거부했고, 가투표 기간 동안 여러 비아프리카계 후보들이 지명되었다.[51]

1991년 선출은 1차 투표부터 가투표를 사용한 첫 사례였다. 1981년과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선출 과정 동안 단 한 건의 거부권도 행사되지 않았다. 이집트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와 짐바브웨의 버나드 치제로가 5차 투표까지 경합을 벌였다. 6차 투표에서 치제로의 지지자 중 일부는 투표가 길어져서 제3의 후보가 나올 것을 우려해 지지를 철회했다.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가 11-0-4의 표결로 선출되었다.[5]:411–412[13]

1996년 및 2001년

[편집]

고령의 부트로스갈리는 원래 단임제만을 생각했으나 1996년 재선에 단독 출마했다. 안전 보장 이사회는 14대 1로 그의 재선출에 찬성했으나, 유일한 반대표는 미국의 거부권이었다.[52] 다른 이사국들이 미국의 입장을 바꾸려 했으나 실패하자, 부트로스갈리는 1996년 12월 5일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53]

그를 대신할 4명의 아프리카 후보가 지명되었다. 여러 차례의 투표에서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어권 국가의 모든 후보에게 거부권을 행사했고, 프랑스는 영어권 국가의 모든 후보에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교착 상태는 프랑스가 마지막 투표에서 기권하면서 해결되었고, 가나의 코피 아난이 14-0-1의 표결로 승리했다.[54]

코피 아난은 2001년 단독 출마하여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선출되었다.

2006년 및 2011년

[편집]

2006년에는 대한민국의 반기문이 1차 투표부터 앞서 나갔다. 마지막 가투표에서 반기문은 14-0-1의 표를 얻었다. 인도의 샤시 타루르는 미국의 거부권 1표를 포함해 10-3-2의 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반기문은 2011년 단독 출마하여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선출되었다.

2016년 및 2021년

[편집]

2016년에는 아직 사무총장을 배출하지 못한 유일한 지역인 동유럽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또한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을 선출하자는 캠페인도 있었다. 13명의 후보 중 9명이 동유럽 출신이었고 7명이 여성이었다.

그러나 동유럽 여성 후보를 선출하려던 두 캠페인 모두 실패했다. 포르투갈의 전 총리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1차 투표부터 선두를 지켰다. 구테흐스는 최종 투표에서 13-0-2를 얻었으며 거부권을 받지 않은 유일한 후보였다. 이로써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1981년 이후 최초의 서유럽 출신 사무총장이 되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2021년 단독 출마하여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선출되었다.[55]

각주

[편집]
  1. Portugal's Antonio Guterres elected UN secretary-general. BBC News. 2016년 10월 14일.
  2. Procedure of Selecting and Appointing the next UN Secretary-General. United Nations. 2016년 1월 4일.
  3. A/RES/11(I) Terms of Appo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 UN Docs. United Nations.
  4. Chesterman, Simon (2007). Introduction. Chesterman, Simon (편집). Secretary or General? The UN Secretary-General in World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7쪽.
  5. 1 2 3 Sievers, Loraine; Davis, Sam (2014). The Procedure of the UN Security Council 4판. Oxford Univ Press. ISBN 9780199685295.
  6. 1 2 3 The 'Wisnumurti Guidelines' for Selecting a Candidate for Secretary-General (PDF). UNElections.org. 2016년 3월 30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2월 31일에 확인함.
  7. Repertoire of the Practice of the Security Council (PDF). 224쪽.
  8. 1 2 Sengupta, Somini (2016년 7월 21일). Secrecy Reigns as U.N. Seeks a New Secretary General. The New York Times.
  9. A Well-Read Secretary General. The New York Times. 1981년 12월 13일. With a figurative puff of white smoke,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finally selected a new Secretary General – a seasoned and soft-spoken diplomat from Peru, Javier Perez de Cuellar.
  10. Lynch, Colum. The Race for U.N. Secretary-General Is Rigged. Foreign Policy.
  11. Israelyan, Victor (November 2010). On the Battlefields of the Cold War: A Soviet Ambassador's Confession. Penn State Press. ISBN 9780271047737.
  12. Selecting the UN Secretary-General: Vetoes, Timing and Regional Rotation (PDF). Security Council Report. 2015년 9월 20일. 2016년 12월 30일에 확인함.
  13. 1 2 Lewis, Paul (1991년 11월 22일). Security Council Selects Egyptian for Top U.N. Post. The New York Times.
  14. 1 2 Crossette, Barbara (1996년 12월 13일). Ghanaian Gains Ground In Candidacy To Head U.N.. The New York Times.
  15. Crossette, Barbara (1996년 12월 12일). In Jockeying to Lead U.N., Ghanaian Is Moving Ahead. The New York Times.
  16. 1 2 Tharoor, Shashi (2016년 10월 21일). The inside Story of How I Lost the Race for the UN Secretary-General's Job in 2006. OPEN Magazine.
  17. 1 2 U.N., Fluent in Anglo-French, Seeks to Go Multilingual. Inter Press Service. 2013년 5월 13일.
  18. FRUS 1946 I, Document 91: Minutes by the United States Delegation of the Five-Power Informal Meeting, Held at London, Claridge's Hotel, 28 January 1946, 9 p.m.
  19. FRUS 1946 I, Document 70: Minutes of the First Meeting of the United States Delegation, on Board the Queen Elizabeth, 2 January 1946, 11 a.m.
  20. Brewer, Sam Pope (1971년 9월 18일). Jakobson Confident on U.N. Candidacy. The New York Times.
  21. Telegram From the Mission to the United Nations to the Department of State, December 21, 1971, 0250Z.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22. Usborne, David (2007년 1월 1일). Ban Ki-Moon: Diplomat with a difference. The Independent. When the Security Council was considering candidates for Secretary-General, he took evening classes in French, even as he was still foreign minister, for fear that France would block his candidacy otherwise.
  23. 70th anniversary of first meeting of General Assembly. United Nations. 2022년 5월 15일에 확인함.
  24. Husen, Van (2010). The Encyclopedia of the Korean War: A Political, Social, and Military History. ABC-CLIO. 504-506쪽. ISBN 978-1851098491.
  25. Ravndal, Ellen (2017). '"A Force for Peace": Expanding the Role of the UN Secretary-General Under Trygve Lie, 1946−1953'. Global Governance 23. 443–459쪽. doi:10.1163/19426720-02303007.
  26. Hamilton, Thomas J. (1952년 11월 11일). Lie Decides to Quit His U.N. Post Now to 'Save the Peace'. The New York Times. 1면.
  27. Nossiter, Bernard D. (1981년 11월 1일). Someone is Trying to Fire Dr. Waldheim. The New York Times.
  28. Silva, Mary Cherif, Nathalie Leroy, Anna Banchieri, Armando Da. Dag Hammarskjöld: The UN years. United Nations.
  29. An Historical Overview on the Selection of United Nations Secretaries-General (PDF). UNA-USA. 2007년 10월 25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9월 30일에 확인함.
  30. Linnér, S. (2007). Dag Hammarskjöld and the Congo crisis, 1960–61 보관됨 3 6월 2013 - 웨이백 머신. Page 28. Uppsala University. (22 July 2008).
  31. Hamilton, Thomas J. (1961년 9월 23일). Interim U.N. Head is Urged by Rusk; His Timing Scored. The New York Times. 1면.
  32. FRUS 1961–1963 XXV, Document 182: Memorandum From the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International Organization Affairs (Cleveland) to Acting Secretary of State Bowles, 18 September 1961.
  33. FRUS 1961–1963 XXV, Document 189: Telegram From the Department of State to the Mission to the United Nations, 25 October 1961, 10:36 a.m.
  34. U. S. and Soviet Gain in Negotiations on New U. N. Chief. The New York Times. 1961년 10월 24일. 9면.
  35. Burmese U.N. Head Acceptable to U.S. with 2 Conditions. The New York Times. 1961년 10월 6일. 1면.
  36. Hamilton, Thomas J. (1961년 11월 2일). Soviet Sees Accord on U.N. Chief Near. The New York Times. 1면.
  37. Brewer, Sam Pope (1961년 11월 4일). Thant Is Elected Interim U.N. Head. The New York Times. 1면.
  38. 1 2 Brewer, Sam Pope (1962년 11월 29일). Russians Agree to Naming Thant for a Full Term. The New York Times. 1면.
  39. Burnham, Alexander (1962년 12월 1일). U.N. Names Thant for 4-Year Term. The New York Times.
  40. Middleton, Drew (1966년 9월 2일). Thant Declares He Will Not Seek Second U.N. Term. The New York Times. 1면.
  41. Middleton, Drew (1966년 9월 20일). Election of Thant with Wider Role in U.N. Due Today. The New York Times. 1면.
  42. Middleton, Drew (1966년 12월 3일). Thant, Renamed, Vows New Effort to End Asian War. The New York Times. 1면.
  43. Tanner, Henry (1971년 9월 11일). Thant Says Farewell to the U.N. Staff. The New York Times.
  44. Telegram From the Mission to the United Nations to the Department of State, December 17, 1971, 0655Z..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45. Ceylon's Delegate to Seek Thant Post. The New York Times. 1971년 4월 24일.
  46. Telegram From the Mission to the United Nations to the Department of State, December 22, 1971, 0356Z.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47. Waldheim is Backed by Security Council for Five Years More. The New York Times. 1976년 12월 8일.
  48. Sciolino, Elaine (1986년 10월 4일). Election of U.N. Leader to 2d Term is Expected. The New York Times.
  49. Sciolino, Elaine (1986년 10월 11일). Javier Perez de Cuellar: Unanimously, the U.N.'s Man. The New York Times.
  50. Lewis, Paul (1991년 10월 22일). Africans Pressing Bid for U.N. Post. The New York Times.
  51. Lewis, Paul (1991년 3월 17일). Search Is On for Next U.N. Secretary General. The New York Times.
  52. Crossette, Barbara (1996년 11월 20일). Round One in the U.N. Fight: A U.S. Veto of Boutros-Ghali. The New York Times.
  53. Crossette, Barbara (1996년 12월 5일). U.N. Leader Halts Bid for New Term but Does Not Quit. The New York Times.
  54. Crossette, Barbara (1996년 12월 14일). Ghanaian Chosen to Head the U.N., Ending Standoff. The New York Times.
  55. Selection and Appo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www.un.org. 유엔 총회. 2021년 4월 15일에 확인함.

더 읽어보기

[편집]
  • Goodwin, Ralph R.; Petersen, Neal H.; Kranz, Marvin W.; Slany, William 편집 (1972), General; the United Nations,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46 I, Washington: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 Claussen, Paul; Duncan, Evan M.; Soukup, Jeffrey A. 편집 (2001), United Nations, 1961–1963,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XXV, Washington: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